책을 읽고 작년에 본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혈연 관계가 없는 이들이 한 집에서 가족으로 살아가며, 법과 사회가 인정하지 않아도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통해 ‘진짜 가족’은 무엇이고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가’를 묻는다. 두 작품 모두 사회적 약자로서 ‘제도 밖의 삶’을 사회가 포기한 존재들이 서로를 사랑으로 보듬으며 구원한다.
대부분의 가족은 서로의 선택이 아닌 혈육으로 이뤄진다. ‘가족같은 사이’라고 표하는 가까운 사이 말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진짜 가족’ 말이다. 모모와 로자는 서로를 선택했고 새로운 가족이 된다. 여기서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책의 전개를 바라보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데, 그 나이에 으레 있어야 할 아이들만의 순수함 필터(?)가 없기도 하고 어려서 생기는 무지에서 연민을 느꼈다.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감히 모모나 로자 아줌마가 쳐해진 상황을 동정해도 되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의 연대와 사랑을 보고, 내가 이러쿵 저러쿵 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인이 10살이라고 알고 있던 14살 모모는 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을 했었고, 로자도 죽기 전까지도 분명 느꼈을 테니까.
내용 외에도 인물들이 점점 병들고 늙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지독하게 해학스러웠다. 초장에는 모모와 로자가 사는 7층 건물의 계단이 매우 높고, 로자 아주머니가 그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종장 즈음에 가면 혼자 힘으로는 오르내리지 못해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 거기에 로자 아주머니 이외에도 모모가 알고있는 지인들(치매를 앓는 하밀 할아부지)이 하나 둘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상당히 슬프면서도 공포스러웠다. 특히나 로자 아줌마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지 구별하는 방법으로 입 근처에 거울을 대고 입김이 서려있다면 살았다고 판단하는 장면..
여러모로 ‘가족’이라는 일반적인 틀을 뒤집어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을 수도..
근데 서로 사랑하면 가족아닌가. ‘사랑과 가족은 그 형태가 더 복잡해지고 더 다양해져도 좋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보호자는 죽어가고 더 나은 대안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아도 결말이 눈에 훤하게 보였고, 이런 신파에 슬슬 면역이 생길 법도 한데 아직 연민이 생기는 것을 보니 나도 아직 사람인가보다.